일본과 한국.
지정학적으로는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나라입니다. 또한 생물학적으로도 무척 유사한 DNA구조를 가졌을 겁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오래전이긴 합니다만 삼국시대 말기 망한 백제의 유민의 상당수가 일본으로 이주하여 돌아오지 않고 계속 살아 가고 있고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도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지금까지도 살고 있죠. 오죽하면 일본 천황 조차도 백제인의 혈통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왜 이렇게 지리적, 역사적, 생물학적으로 가까운 두 나라와 그 두 나라의 사람들은 이다지도 심리적으로 가까와지지 못하는 걸까요? 많은 분들은 그 이유가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근대사 36년간 지배자와 식민지의 관계였던 역사적 아픔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가해자 입장이었던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계속 부인하고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 생각에 100% 공감합니다.
일본과 비슷한 입장인 독일의 경우, 일본보다 더 많은 이웃나라에 우리나라가 받은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을 준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현재는 유럽공동체의 일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음에도 일본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과거를 부인하고 부정하면서 과거 역사에 대한 공식적인 사죄 담화마저도 취소해야한다고 할 만큼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여 이웃 국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죠.
일본이 계속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아마도 머지않은 시기에 일본은 외교적으로 완전하게 고립되고 후진국으로 뒤쳐질지도 모릅니다. 경제와 과학기술이 국력인 현대사회에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일본의 비중은 이미 점점 작아지고 있고 아시아의 리더는 중국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국인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만, 필리핀, 러시아 등과 계속적으로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어찌보면 외교적 자살행위와도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과거에 대해 사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주 단순한 “왜 진심으로 사죄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은 의외로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왜 진심으로 사죄하지 못하는가?”를 이해하려면 섬나라 일본의 복잡한 역사와 그들의 국민성을 이해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단순히 역사와 국민성의 문제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천황(덴노)”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기 때문에 더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됩니다.
나름…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이책..저책 많이 뒤져보았고 비록 여행이긴 하지만 일본을 몇차례 오가며 일반 국민들의 사고와 생활상을 살펴본 경험을 토대로 그 이유에 대해 적어보고자 합니다.
일본어에 욕이 없는 이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 듯 일본어의 욕은 우리나라의 욕과 비교하자면 욕 축에도 못낍니다. 일본어에서 욕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로 많은 학자들은 일본이 섬나라이고 그로 인해 “와”라 부르는 “화합”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좁은 섬나라에서 서로 싸우면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에 죽기로 싸울 것이고 그것은 모두가 죽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전 조금 더 구체적인 부분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막부(幕府)”라고 부르는 군사정권이 권력을 잡아 왔습니다. 당연히 말단 공무원에 해 당되는 하급무사까지 사회의 말단 지도층까지를 “무사”들이 차지했습니다. 무사들은 항상 칼을 차고 다녔고 무사에게 잘못을 하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는 그야말로 무사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사들도 계급이 있고 그들간에도 이러한 규칙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러한 사회분위기에서 욕은 상상도 하기 힘들겠죠. 자칫 무사들에게 욕을했다가는 명예를 생명과 같이 여기는 무사들에게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수도 있으니까요.
짧다면 짧은 수십년만에도 변하는 것이 언어입니다. 하물며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배계급으로 자리잡은 무사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멸시하는 “욕”은 더 이상 격한 감정을 전달하는 언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또한 욕은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고 비하하는 언어입니다. 욕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욕을 할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기에 일본인 특유의 “기쿠바리(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행위)”와 “혼네(속마음)” 그리고 “다테마에(겉모습)”의 문화가 발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욕”은 더 설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지요.
많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당황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한국인입니다. 언어적으로든 행동으로 든 한국인은 너무 직설적이라는 것에 당황합니다. 우리 입장에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모든 일에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일본인의 입장에선 무척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에둘러 간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일왕은 사죄하라”는 돌직구성 요구는 일본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언어에서 욕이 사라질만큼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본인들에게 잘못은 알고 있지만 직접적인 “사죄”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요.
정부의 부당한 언행에도 잠자코 있는 일본인
많은 지식있는 일본인 들은 일부 우익과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부당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사례 )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일본 정부의 논리는 역사를 모르는 젊은 층에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젊은 이들은 정부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일본이외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본 국민들의 순진함(?)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일본의 국민들은 그 어느나라의 국민들보다도 정부의 요구나 지침에 순응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은 1000년 넘게 무사정권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무사정권에 반대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의 역사에는 항상 권력의 정치적 횡포와 부당함에 대한 “민중”의 봉기나 혁명이 예외없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민중의 혁명이 없는 거의유일한 나라가 일본입니다. (영국도 그렇습니다만 양상은 조금 다릅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근대에 짧은시간 공산주의자들의 민중투쟁이 있었지만 모두 정권의 권력에 탄압당해 초기에 자취를 감추었던 시기를 제외하면 민중 혁명은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일본의 일반 대중은 무사정권의 힘에 눌려 정치나 권력은 칼쥔자들만이 갖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DNA에 새겨질만큼 정치나 권력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권력을 가진자들 끼리의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있죠. 예를들면 일본의 전국시대에 여러 나라(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의 백제,신라,고구려와 같은~~)끼리의 전쟁이 벌어져도 그 전쟁은 무사계급들간의 전쟁일 뿐 일반 농민들은 전쟁에 동원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일반 국민인 농민계급이 전쟁이 참여하지 않는 다는 것은 결국 철저하게 권력이나 정치에는 그 어떠한 권리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정부에서 무슨일을 어떻게 하든 상관할바가 없는 것입니다.
현재의 일본정부가 하와이가 일본땅이라 주장해도 대부분의 국민은 조용히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발끈하기 있긔~없긔~?)
그렇듯 일본국민들은 권력을 잡은 정권에 무척이나 순응하며 살아가는 국민성이 몸에 배여져 있고 또 그렇게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한 점을 잘 알고있는 일본정부나 천황이 궂이 사과나 사죄를 할 이유가 없지요. 잘못한건 알지만 궂이 사과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는데 말입니다.
천황은 신성 불가침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은 사죄하라”는 의미의 발언으로 일본이 발칵 뒤집혔죠.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의 그러한 반응에 똥싼놈이 성낸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고 있습니다. “일왕은 사죄하라”에는 일본인들이 기분나빠할 두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일왕”이라는 단어입니다.
일본의 왕을 왕이라 부르는데 왜 성질내냐라고 일본 이외의 나라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섬나라고 국가간의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부족합니다. 즉 자기들이 천황이라 부르면 남의 나라 사람들도 천황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답답한 일이죠. 섬나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근거없는 자존감을 갖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영국도 마찬가지..)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객관적으로 힘세고 큰나라의 순위를 매길줄 압니다만 섬나라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가 최고다 라는 생각을 갖는 경향이 강합니다.
둘째는 천황에게 “사과”하라는 말입니다.
일본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2천년이 넘게 단일 혈통의 왕족이 있는 나라입니다. (단지..자기들 주장이지만) 그리고 그것을 “만세일계”라고 부르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선지 무사들이 정권을 잡았던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무사 정권은 여러차례 힘의 논리에 의해 피바람을 일으키며 바뀌었으나 왕족을 무시할 지언정 감히 새로운 왕조를 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천황의 정부와는 다른 무사들의 정부를 따로 세우는 변태적인 정부 구조를 수립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1000년이 넘은 후 제국주의에 접어들면서는 천황을 “신”의 경지에 다시 올려둘 만큼 천황은 시성불가침의 존재로 생각합니다. 이것 또한 우두머리를 신처럼 떠받드는 전형적인 섬나라의 특징중 하나입니다.
쉽게 이야기해 감히 어떻게 천황에게 “사과”하라는 불경스런 말을 하냐는 것이죠. 당연히 이런 사고는 자신들이 아무리 떠받드는 천황이라도 다른 나라에서 볼 때는 단지 “왕”일 뿐이라는 입장 바꿔 생각하는 사고가 부족한 섬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잘못의 인정은 죽음을 의미하는 무사도 정신
일본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천년넘는 시간동안 일본을 지배했고 지금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무사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무사도 정신이 무조건 잘못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명예를 더럽힌 무사는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매장당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천황에게 잘못을 인정하라는 것은 일본인들에겐 일본 전체의 정신적인 죽음 선택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례로 2차 대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일본에 진주한 맥아더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일본정부는 항복을 하였지만 일본인들이 반항을 하여 곳곳에서 미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이 펼쳐지지 않을까 한 것입니다. 그런 우려의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일본 천황의 라디오 항복 선언”입니다.
천황이 직접 항복 선언문을 라디오에 출연하여 읽었고 천황은 신이 아니다라는 말을 직접하게 하였습니다. 결과는 대성공 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일본인들의 반항은 전무~하였던 것이지요. 그만큼 일본에서 천황은 절대적인 존재 입니다. 천황이 항복했는데 감히 누가 반항을 하냐는 것이지요.
일본은 절대 자발적으로는 제국주의 침략을 사죄하지 못한다.
결국 일본 천황에게 주변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과 만행을 반성하는 의미의 “사죄”를 하라는 것은 일본에게 정신적 죽음을 택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과연 일본의 천황이 과거를 사죄하는 발언을 할까요? 마찬가지로 천황은 아니더라도 일본 정부가 “사죄”라는 단어를 써서 피해 당사국의 용서를 구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사죄는 곧 자신들의 정신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죠.
잘못한 것을 몰라서 사죄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이죠.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과 만행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순간 사무라이의 할복을 떠올릴 것입니다.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서는
일본의 진정한 의미의 사죄를 받기 위해서는 일본을 완벽하게 굴복시켜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의 미국 처럼 무력이든 경제력이든 일본을 완벽하게 굴복시켜야만 사죄를 받아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일본의 천황이나 정부의 완벽한 굴복을 받아내기만 한다면 사죄는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천황이든 정부든 공식적인 사죄만 받아 낸다면 대부분의 일본 국민은 순응하며 인정할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기 참 어려운 나라가 바로 일본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