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병자, 노약자, 장애우, 빈곤층, 저소득 취업준비생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시행할라치면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비판이 조중동과 같은 주류언론에서 조차 뉴스화되어 미디어에 표출되고 있다. 그러면서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의 예를 들며 포퓰리즘에 따른 복지정책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듯 보도한다.
포률리즘은 악인가?
그렇다면 과연 포퓰리즘(대중주의)은 나라를 망치는 이데올로기인가?
과연 민주주의와 포률리즘은 어떤차이가 있을까? 그 정의에서 부터 알아보면, 민주주의는 국가의 정치체제로서의 제도에 해당하고 포퓰리즘은 정치 이데올로기에 해당한다. 둘의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다만 포퓰리즘은 국가의 정치제도를 구현함에 있어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현되는가의 관점에서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채택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이므로 상대적인 비교, 즉 민주주의에 적합한 이데올리기 인지를 판단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 포퓰리즘 |
한 국가의 주권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국가에 속한 모든 국민에게 부여하고, 이렇게 부여된 개개인의 권력을 기반으로 현실정치를 구현하는 사상 또는 그러한 정치체제. 즉 모든 국민에게 주권이 있고 국민의 뜻에 따라 권력이 행사되는 정치체제. |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 정치제도가 소수의 엘리트 등 소수에 의해 권력이 행사되지 않고 민중의 일반의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정치 이데올로기 |
사실 민주주의의 정의와 포퓰리즘의 정의를 보면 “뭐가 문제지?”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가 될만한 소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는 포퓰리즘 때문인가?
많은 언론과 저명한 보수 인사들이 포퓰리즘을 비난하면서 드는 예가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다. 두 나라의 경제 붕괴 원인이 포퓰리즘에 의한 복지확대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그럴까? 언론과 보수 인사들의 발언은 팩트일까? 마치 팩트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팩트가 아닌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붕괴는 사실은 꾸준히 성장하던 경제가 과도한 외채를 끌어들여 성급하게 추진한 중화학공업육성책의 실패로 닥친 외환위기가 원인이다. 또한 베네수엘라의 경우도 좌파 차베스정권이 복지를 확대한 것은 맞지만 산업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석유 수출에 과도하게 의지하며 장기집권에 몰두하던 중 유가급락으로 인해 발생한 인플레이션이 원인이다.
그럼에도 보수 엘리트주의자들과 조중동 등 수구 언론은 특히 베네수엘라의 예를 들며 “과도한 포퓰리즘”이 국가경제를 망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복지정책을 확대한 것은 맞다. 그렇다면 사우디, 아랍에미레이트, 브루나이 등 베네수엘라처럼 석유수출에 의존하며 복지가 더 좋은 국가들은 왜 유가폭락에도 멀쩡한 것일까 ? 그 나라들의 복지는 포퓰리즘이 아니고 다른 것인가?
오히려 아르헨티나의 경우를 보며 우리 국민들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한다. 아르헨티나는 1970년대 중반까지 농,축,수산업에 의존해 꾸준한 경제성장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1976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사독재 정권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과 유사한 정책을 펼쳤다. 즉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외자를 유치했다. 게다가 노동법을 개정해 해고를 자유롭게 했으며 최저임금제를 폐지했고 노동력제고를 위해 노조를 탄압했다. (우리나라의 박통시절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러한 정책은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게다가 경제붕괴를 가져온 정권은 군사독재정권이다. 포퓰리즘과 비슷한 정책을 펴지도, 펼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고 결국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군사독재를 통한 독단적인 경제정책은 이렇게 위험한 것이다. 박정희의 독재를 통해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주장은 결과론적인 것일 뿐 옳은 판단은 아닌 것이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의 경제붕괴가 포퓰리즘 정책 때문이라는 것은 그 인과관계가 너무도 희박하다.
왜 포퓰리즘을 악으로 매도하는가?
조중동과 자유한국당 등 경제, 언론, 교육, 정치, 사법 등 사회의 주류 계층이 포퓰리즘을 배척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있다.
바로 포퓰리즘이 대의민주주의로 포장된 “엘리트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포퓰리즘을 배척하는 이유가 “엘리트주의”와 반대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누군가가 이야기했던 “대중(국민)은 개,돼지”라는 생각을 그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엘리트주의는 “민중은 무지하기 때문에 많이 배운 엘리트들에 의해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사고가 기저에 깔려있다. 그리고 그 엘리트주의를 포장하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대의민주주의다. 즉 정치 권력을 대중에게 내어줄 수 없다고 여기며 대중의 뜻에 반하더라도 엘리트인 자신들이 펴는 정책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엘리트 계층의 의도에 반하는 정책은 대중으로 표현되는 대다수 국민의 뜻과 그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여 비난하는 것이다.
선거철에는 대중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해줄 것 처럼 공약을 내걸지만 막상 선거에서 국회의원, 도지사에 선출되면 입을 싹~ 씻는것을 많이 보지 않았는가?
이런 증거는 엘리트로 불리는 계층의 커뮤니티에 가면 쉽게 접할 수 있다. 하나의 링크를 제공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발행하는 대학신문에서 발행한 기사로서 “포퓰리즘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다. 기사의 내용은 온갖 정치철학자들의 주장과 적절하지 않은 베네수엘라와 칠레와 미국을 예로 들며 권력을 잡은 집권자가 포퓰리즘 정책을 펼쳐 집권자가 나라를 망쳤다고 보도한다.
하지만 그 나라들이 무너진 것은 앞에서도 설명했듯 잘못된 경제 정책 때문이지 포퓰리즘이라는 정치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다. 대중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해야한다는 포퓰리즘을 매도하기 위해 부정적인 사례를 끼워맞추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심지어 포퓰리즘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바로 포퓰리즘(대중주의)을 “대중영합주의”라는 단순히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대중을 현혹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질시켜 버린다. “대중(국민)이 대중(국민)의 뜻에 따라 대중(국민)을 위한 정치”를 의미하는 민주주의 정치제도와 일맥상통하는 포퓰리즘(대중주의)을 대중을 현혹하여 독재를 일삼는 정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 시켜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렇게 포퓰리즘(대중주의)의 의미를 왜곡하고 격하시키며 비난하는 의도는 딱 하나다. 대중(국민)의 정치참여를 최소화하여 엘리트들이 국가의 권력을 잡기 위한것이다. 소수의 엘리트에게 국가의 운명을 맏기는 것이 옳은지 대다수의 국민인 대중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대한민국 국민은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지혜로운 선택과 행동이 집단지성으로 발현되어 국가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면 포퓰리즘은 아주 좋은 민주주의 제도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소수 엘리트로 포장된 이기주의자들과 악에 물든 사람들에 의해 국가가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대의민주주의 #엘리트주의 #대중주의 #포퓰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