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의 남쪽에는 남산이라 불리는 작은 산이 있다. 경주를 끼고 있는 덕분에 남산에는 엄청나게 많은 천년 고도 경주의 유적이 널려 있다. 경주 출장의 마지막 날 옆지기와 합류하여 1박을 하고 토요일 이른 아침 남산 하이킹에 나섰다.
경주 남산 역사문화 탐방로
경주의 남산에는 정말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있다. 그 덕분에 남산의 하이킹을 즐기며 역사 유적을 둘러보는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기도 하다. 경주 남산에는 모두 네 코스의 역사문화 탐방 하이킹 코스가 있다.

우리는 삼릉(서남산주차장)에서 출발해 상선암과 금오봉을 거쳐 용장사지를 지나 용장골 공원지킴터로 하산하는 코스를 오르기 했다.
이 코스에는 석조여래좌상, 마애관음보살상, 상선암, 용장사지와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용장사곡 삼층석탑, 설잠교 등등 보물급 유적들이 즐비하다.
삼릉탐방지원센터
경주 배동에 있는 삼릉은 신라시대 박씨 왕릉 3개가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이 왕릉보다는 삼릉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이 더 유명하다. 아침 햇살이 비추는 삼릉 소나무 숲의 풍경은 정말 유명하다.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 삼릉 소나무 숲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삼릉 바로 옆에 경주 남산의 삼릉탐방지원센터가 있다. 탐방지원센터의 길 건너에 너른 주차장이 있어 주차도 쉽다. 탐방지원센터 앞에는 이 하이킹 코스를 오르며 만날 수 있는 역사 유적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삼릉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완만한 등산로를 한동안 걷는다. 12월 중순에 접어드는 겨울의 이른 아침인데다 남산의 서쪽인지라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해가 들기 시작하기에 꽤 추울 수 있다.
우리는 상선암을 거쳐 금오봉으로 오르는 코스로 간다.

상선암까지는 1.35 km를 가야 한다.
상선암 가는 길
상선암 가는 길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경주 남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경사도는 꽤 가팔랐다. 삼릉 지나 조금 걷다 보면 갑자기 급경사로 변한다.

조금 지나면 곳곳에서 신라가 불교 국가임을 알 수 있는 유적들이 나타난다. 처음으로 나타나는 유적은 석조여래좌상터다. 석조여래좌상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전각터와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상이 남아 있다.

상선암을 향해 걷다 보니 어느새 햇살이 살짝 비추기 시작하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단풍을 볼 수 있었다.

상선암이 가까워질 수록 경사가 심해진다 싶으면 상선암이 나타난다.

상선암에 대한 내력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현재 남산에 남아 있는 많은 암자터의 옛 모습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암자라고 한다. 암자 근처에는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는데 그 일대를 절터로 추정하고 있다. 상선암에 대한 기록은 유통도록이라는 고문서에 남아있으며 조선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상선암에는 선각보살입상이라는 불상이 있었으며 5~6m의 대형 불상으로 추정되나 상반신과 발은 훼손되어 사라졌고 하반신만 발견되었다고 한다.
남산 정상 금오봉 가는 길
상선암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면 남산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으로 올라갈 수 있다.

상선암에서 금오봉으로 갈 수 있는 주능선 바로 아래에 바둑바위라는 조망터가 있다. 신선들이 모여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이곳이 북쪽을 바라보는 곳인지라 겨울에는 북풍이 엄청 강하게 부는 곳인 듯 하다. 이날은 바람이 조금 부는 날씨였는데 바둑바위에서는 강풍을 견뎌야 했다. 바둑바위에서 조금 더올라가면 상사바위도 있는데 이곳도 조망이 좋았다.
상사바위에서 부터는 금오봉으로 이어지는 남산의 주능선이다.

암벽을 끼고 걷다 보면 삼릉계곡의 마애석가여래좌상이 보인다. 통일신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남산에서 가장 높은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이라고 한다.

이렇게 험하고 위험한 암벽에 불상을 새기는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진다. 암벽에 조각된 불상에 감탄하고 다시 금오봉으로 향한다.

살짝 내리막과 오르막을 걷다 보면 지금은 흔적만 남은 절터가 있기도 하다. 안내판이 없다면 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평이한 걷기 좋은 능선길을 잠시 걷는다.

드디어 금오봉이다.

남산의 정상인 금오봉에는 너른 공터가 있다. 잠시 쉬어도 좋겠지만 특별히 멋진 조망을 할 수 있는 바위가 없어 기념사진만 찍고 지났다.
금오봉에 있는 이정표다. 우리는 삼릉주차장에서 왔다.

우리는 용장골(용장마을) 방면으로 하산한다. 용장골로 가다보면 용장사지가 있다.
용장사지 가는 길
남산의 주능선을 따라 살짝 내리막길을 걷는다. 해가 점점 높이 뜨기에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밖에내려가지 않았는데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건너 주능선을 더 탈 수 있는데 그러면 용장사지를 갈 수 없다. 잠시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다시 용장사지 방면 등산로로 접어드는 이정표가 있다. 그 이정표를 따라 등산로로 내려간다.

우리는 이른 아침 산행에 나서면 식사를 하지 않고 산을 오른다. 그렇게 두세 시간 산행을 하면 점점 배가 고파지고 그때쯤 미리 준비해 간 간식이나 간단한 김밥, 컵라면 등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곤한다.
이날도 금오봉에서 용장사지로 내려가는 구간에 햇살이 잘들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멋진 조망을 볼 수 있는 바위가 있어 그곳에서 주린 배를 채웠다.

따뜻한 햇살아래 이십여분 앉아 있었더니 얼굴이 따끔거릴 정도로 탔다. ^^ 조금 더 내려가자 용장사지의 유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주 남족의 들판이 잘 보이는 곳에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우뚝 서있다.

용장사는 생육신의 한명인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면서 조선시대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만큼의 유적만 남아있고 절은 모두 사라졌다. 이곳에서의 경치 또한 정말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삼층석탑이 있는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지난다.

삼층석탑 아래로 내려가면 용장사지의 또 하나의 유적이 나타난다.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이다. 삼층석탑의 절벽 아래에 있다.

이 마애여래좌상의 어깨 바깥부분에 10자 정도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글자로 추정컨대 977년 또는 102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용장사가 적어도 1000년 이상 된 사찰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애여래좌상 바로 옆에 얼굴이 사라진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자연암반에 쌓아올린 석조불상이다. 1920년에 용장사라고 새긴 기와가 발견되었고 삼국유사에 경덕왕(742-765 재위) 시기에 승려 대현이 용장사에 살았고 절에는 돌로 만든 미륵 장육상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용장사의 창건 시기는 최소한 1300년으로 높아졌다.

석조여래좌상을 뒤로 하고 내려가다 보면 절터임이분명한 터가 나오는데 그곳에서의 풍경도 좋다. 한 겨울에도 해가 잘 드는 그런곳이다.

용장사지에서 용장마을까지는 2.45 km를 내려가야 한다. 금오봉까지는 1.1 km다.
설잠교를 지나 용장마을로
용장마을로 하산하다 보면 설잠교가 나오는데 설잠은 생육신 김시습의 법호였다.

용장골에 다리를 세우면서 세조의 왕권 찬탈에 반발해 모든 공직을 버리고 속세를 떠나 용장사의 산승으로 들어간 김시습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김시습의 법호인 설잠을 따와 설잠교라 지었다고 한다.
국회에 의해 탄핵된 윤석열은 본인을 검찰총장으로 세워 준 전직 대통령을 배신하고 반대편에 서 대통령이 된 후 본인과 아내의 부정과 비리를 덮을 길이 없자 민주주의 국민의 권력을 독재 권력으로 찬탈하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내란에 실패 한 후에는 자신을 따라 내란을 일으킨 부하들을 배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윤석열과는 너무도 다른 김시습의 충절이 후세에 더 돋보이는 듯 하다.
설잠교를 지나 용장계곡을 따라 용장마을로 하산한다.

용장마을에 거의 다 내려왔다.

용장마을에 들어서면 출렁다리가 있다.

용장마을에서 삼릉으로 가는 방법은 그냥 버스를 타면된다. 용장마을로 내려와 버스가 다니는 도로 쪽으로 죽 나오면 차도의 왼쪽 방면으로 내남파출소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 500번, 506번, 505번, 507번 중 아무 버스나 먼저 오는버스를 타면 출발지였던 삼릉가지 5분이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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